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 경제사 요약
이 책은 청소년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처럼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1장에는 고대와 중세의 경제, 2장에는 자본주의에 대해 쓰여져있고 3장에는 세계 경제의 미래라고 되어있는데 19세기 후반 제국주의부터 20세기 21세기까지의 경제 문제들과 방안에 대해 쓰여져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적절한 분량에 가벼운 주제들이 들어가 있어 호기심을 불러들이기 충분했다. 역사와 경제를 한번에 묶어 보는 시각을 통해 경제와 역사,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숫자와 시계가 중세시대에 들어와 경제를 발전시켰고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긴 했지만 혁명 후 공산주의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소비에트연방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 책을 읽고 여러가지 호기심이 생겼다. 역사속에는 사회가 들어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한 요소중 하나가 바로 경제이다. 역사를 경제적 관점으로 본 이 책을 추천한다.
1만년전 소아시아 토로스 산맥에는 무리지어 다니면서 사냥을 하거나 식물을 모아먹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 중 한 여자가 씨앗으로 식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본격적으로 농업을 했다. 그러면서 농작물과 항아리를 교환하는 물물교환이 생기고 고대그리스시대에는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로마시대에는 로마가 정복한 땅 대부분에 길을 만들어서 경제가 발전했다. 이 때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요소중에 하나는 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법이 얼마나 힘있는지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법 대전' 을 편찬하면서 동로마제국은 번영을 누렸다. 중세시대에는 땅을 가진 영주들 밑에서 농노들이 일을 했다. 이들은 노예는 아니었지만 영주들의 땅에서 살면 땅을 벗어날때도 영주의 허락을 맏아야했다. 또 중세에는 정기적으로 시장을 열어 물물교환을 하거나 돈을 이용하기도 했다. 중세시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십자군전쟁을 통해 들어온 아라비아 숫자와 이전에는 정확하고 많지 않던 시계가 톱니바퀴와 기계들로 만들어져 일정하게 움직이게 된 기계시계의 발명도 경제가 발전하게된 한 요소 중 하나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쓰고 있는 돈은 그 원료인 금또는 은이 많이 나지 않아 중세시대때 아직 널리쓰이지는 못했다. 그러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오스만투르크가 비잔티움제국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자 동방무역이 어려움을 갖게되고 대서양을 건너 인도를 가기로 마음먹은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메리카대륙도 발견하게되는데 이때 엄청난 금들이 유럽으로 들어와 화폐가치가 떨어지게된적도있었다.
16세기 처음으로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졌다. 증권거래소는 실제 물건을 가져오지 않고 문서로 사고파는 것이다. 대항해시대 증권거래소에서는 배에 투자하기도 하였는데 투자자들이 항해에 드는 비용을 일정부분 지불하고 항해가 성공하면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항해가 실패할땐 큰 손실이 뒤따랐다. 절대왕정시대 프랑스에서는 콜베르라는 재정총감이 중상주의라는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중상주의는 수출은 많이 하고 수입은 억제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나중에 프랑스말고도 다른 나라들도 이 정책을 택해 관세장벽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경제학자 케네는 중상주의를 반대하고 중농주의를 주장했다. 중상주의는 농업보다는 공업을 좀 더 중요하게 여겼다. 반대로 중농주의는 농업을 더 중요시했는데 케네는 사람들을 세가지 계급으로 분류했다. 왕, 성직자, 귀족처럼 땅을 가진 지주 계급과 수공업자와 노동자들을 비생산 계급에 분류했고 농민들을 생산계급에 분류했는데 농민들이 곡식을 추수해 지주 계급에게 세금으로 내고 비생산 계급에게서 공산품과 곡식을 교환한다. 그래서 케네는 '순수한 생산품' 이 농민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에서는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썼다. 국부론은 정부가 시장을 가만 놔두라는 자유방임주의가 들어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서 가격과 수요, 공급들을 모두 알아서 조절해준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때 더 많이 노력하게되고 그것은 전체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1776년 국부론이 나온 몇 년 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초기 산업시대에는 환경이 열악하고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 내몰았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상대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산주의자 동맹을 만든 뒤 공산당선언을 썼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혁명 이후의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사회주의가 시대상의 흐름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것이므로 미래에 대해서는 구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이 나온 후 20년 정도가 지나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제국주의는 열강들이 식민지를 만들어 자국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식민지에서 팔고 또 원료도 식민지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뒤늦게 뛰어들은 독일과 일본등은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지 못했고 이것이 후에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전쟁 중 전쟁터였던 유럽과 멀리 떨어져있던 미국은 군수품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전쟁 후에는 경제호황을 누렸다. 미국 기업들은 호황기때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냈고 노동자들도 많이 고용하고 하루가 다르게 주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신문에 나왔다. 사람들은 주식을 과도하게 많이샀다. 그러던 1929년 10월 뉴욕에서 대공황이 터지자 수많은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고 거리에 나오게 되었다. 케인즈는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이라는 책에서 경제 위기를 그냥 놔두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한 그때 까지의 생각은 케인즈는 대개는 맞지만 항상 맞는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정부가 불경기에는 돈을 더 많이쓰고, 호경기때는 돈을 적게 써야 시장의 안정을 되찾는 다고 생각하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공공 투자를 늘리고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수정 자본주의'를 주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 하에 도로공사와 댐공사를 벌여 실업자들을 고용하여 대공황을 극복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가 오고 미국은 초토화된 서유럽을 돕고 공산화되지 않도록 마셜플랜을 발표했다. 유럽의 16개국은 130억 달러 이상을 지원받고 미국은 30만 명 이상의 유럽인을 미국 국민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1980년대 소련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공산주의의 계획경제가 실패하게 되었다. 계획경제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아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굉장히 저하시키고 목표량을 정해주는 중앙 본부를 속였다. 계획경제에 대해 폴란드의 한 노동자는 "공산주의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돈을 줄 것처럼 행동하고, 우리는 마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고 말했다.
1장에는 고대와 중세의 경제, 2장에는 자본주의에 대해 쓰여져있고 3장에는 세계 경제의 미래라고 되어있는데 19세기 후반 제국주의부터 20세기 21세기까지의 경제 문제들과 방안에 대해 쓰여져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적절한 분량에 가벼운 주제들이 들어가 있어 호기심을 불러들이기 충분했다. 역사와 경제를 한번에 묶어 보는 시각을 통해 경제와 역사,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숫자와 시계가 중세시대에 들어와 경제를 발전시켰고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긴 했지만 혁명 후 공산주의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소비에트연방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 책을 읽고 여러가지 호기심이 생겼다. 역사속에는 사회가 들어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한 요소중 하나가 바로 경제이다. 역사를 경제적 관점으로 본 이 책을 추천한다.
1만년전 소아시아 토로스 산맥에는 무리지어 다니면서 사냥을 하거나 식물을 모아먹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 중 한 여자가 씨앗으로 식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본격적으로 농업을 했다. 그러면서 농작물과 항아리를 교환하는 물물교환이 생기고 고대그리스시대에는 사유재산을 허용하고 로마시대에는 로마가 정복한 땅 대부분에 길을 만들어서 경제가 발전했다. 이 때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요소중에 하나는 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법이 얼마나 힘있는지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로마법 대전' 을 편찬하면서 동로마제국은 번영을 누렸다. 중세시대에는 땅을 가진 영주들 밑에서 농노들이 일을 했다. 이들은 노예는 아니었지만 영주들의 땅에서 살면 땅을 벗어날때도 영주의 허락을 맏아야했다. 또 중세에는 정기적으로 시장을 열어 물물교환을 하거나 돈을 이용하기도 했다. 중세시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십자군전쟁을 통해 들어온 아라비아 숫자와 이전에는 정확하고 많지 않던 시계가 톱니바퀴와 기계들로 만들어져 일정하게 움직이게 된 기계시계의 발명도 경제가 발전하게된 한 요소 중 하나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쓰고 있는 돈은 그 원료인 금또는 은이 많이 나지 않아 중세시대때 아직 널리쓰이지는 못했다. 그러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오스만투르크가 비잔티움제국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자 동방무역이 어려움을 갖게되고 대서양을 건너 인도를 가기로 마음먹은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메리카대륙도 발견하게되는데 이때 엄청난 금들이 유럽으로 들어와 화폐가치가 떨어지게된적도있었다.
16세기 처음으로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졌다. 증권거래소는 실제 물건을 가져오지 않고 문서로 사고파는 것이다. 대항해시대 증권거래소에서는 배에 투자하기도 하였는데 투자자들이 항해에 드는 비용을 일정부분 지불하고 항해가 성공하면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항해가 실패할땐 큰 손실이 뒤따랐다. 절대왕정시대 프랑스에서는 콜베르라는 재정총감이 중상주의라는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중상주의는 수출은 많이 하고 수입은 억제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나중에 프랑스말고도 다른 나라들도 이 정책을 택해 관세장벽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경제학자 케네는 중상주의를 반대하고 중농주의를 주장했다. 중상주의는 농업보다는 공업을 좀 더 중요하게 여겼다. 반대로 중농주의는 농업을 더 중요시했는데 케네는 사람들을 세가지 계급으로 분류했다. 왕, 성직자, 귀족처럼 땅을 가진 지주 계급과 수공업자와 노동자들을 비생산 계급에 분류했고 농민들을 생산계급에 분류했는데 농민들이 곡식을 추수해 지주 계급에게 세금으로 내고 비생산 계급에게서 공산품과 곡식을 교환한다. 그래서 케네는 '순수한 생산품' 이 농민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에서는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썼다. 국부론은 정부가 시장을 가만 놔두라는 자유방임주의가 들어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서 가격과 수요, 공급들을 모두 알아서 조절해준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때 더 많이 노력하게되고 그것은 전체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1776년 국부론이 나온 몇 년 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초기 산업시대에는 환경이 열악하고 어린아이들까지 공장에 내몰았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상대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산주의자 동맹을 만든 뒤 공산당선언을 썼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혁명 이후의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사회주의가 시대상의 흐름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것이므로 미래에 대해서는 구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이 나온 후 20년 정도가 지나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제국주의는 열강들이 식민지를 만들어 자국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식민지에서 팔고 또 원료도 식민지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뒤늦게 뛰어들은 독일과 일본등은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지 못했고 이것이 후에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전쟁 중 전쟁터였던 유럽과 멀리 떨어져있던 미국은 군수품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전쟁 후에는 경제호황을 누렸다. 미국 기업들은 호황기때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냈고 노동자들도 많이 고용하고 하루가 다르게 주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신문에 나왔다. 사람들은 주식을 과도하게 많이샀다. 그러던 1929년 10월 뉴욕에서 대공황이 터지자 수많은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고 거리에 나오게 되었다. 케인즈는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이라는 책에서 경제 위기를 그냥 놔두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생각한 그때 까지의 생각은 케인즈는 대개는 맞지만 항상 맞는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정부가 불경기에는 돈을 더 많이쓰고, 호경기때는 돈을 적게 써야 시장의 안정을 되찾는 다고 생각하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공공 투자를 늘리고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수정 자본주의'를 주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 주도 하에 도로공사와 댐공사를 벌여 실업자들을 고용하여 대공황을 극복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가 오고 미국은 초토화된 서유럽을 돕고 공산화되지 않도록 마셜플랜을 발표했다. 유럽의 16개국은 130억 달러 이상을 지원받고 미국은 30만 명 이상의 유럽인을 미국 국민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1980년대 소련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공산주의의 계획경제가 실패하게 되었다. 계획경제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아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굉장히 저하시키고 목표량을 정해주는 중앙 본부를 속였다. 계획경제에 대해 폴란드의 한 노동자는 "공산주의자들은 마치 우리에게 돈을 줄 것처럼 행동하고, 우리는 마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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